백곡 김득선 선생을 아는가?
조선시대 최고의 독서왕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유명한 시인이자 독서가 백곡(白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서 10살이 돼서야 글을 깨치게 되었다. 글을 한 편 쓸 수 있게 된것도 20살이 되어서 였다.
그 당시 명문가의 수제들이 3살이면 천자문을 익히고, 10살이면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20살에는 과거에 급제하였다 하니,
백곡은 늦어도 상당히 늦은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직접 10살때부터 글을 가르쳤지만, 금방 읽은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아들에게 주변사람들은 "저런 둔재에게 글을 가르쳐 무얼하겠나" 수군댔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히려 "저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대견스럽네.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는가"라며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둔함을 꾸짖지 않고, 끝까지 믿고, 칭찬하며, 격려하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긍정적인 태도는 백곡선생으로 하여금 긍정적 자기 암시를 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인간의 정신 영역은 10%의 의식과, 90%의 잠재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의 긍정적 암시를 통해 백곡선생은 자신의 잠재의식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던 백곡선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그 노력은 무려 한 번 읽은 책을 1만 번 이상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자를 20,000번, 목가산기 18,000번을 읽었다.
1만번이상 읽은 책만해도 36권에 달하며, 특히 사기의 백의열전은 113,000번을 읽었다고 한다.
백곡선생의 아버지는 돌아가시며 '60세 까지는 과거에 응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포기하지 않는 아들의 성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선비들이 30세가 되면 과거시험을 포기하는데, 백곡선생은 계속 도전하여 39세에 지금의 9급공무원에 해당하는 진사시에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백곡선생은 도전을 멈추지 않고, 환갑을 앞둔 59세에 지금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문과 증관시에 합격하며 조선최고의 학문기관인 성균관에 들어가게 된다.
충청북도 증평에 있는 백곡선생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져 있다고 한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한계를 짓지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뿐이다
눈앞에 보이는 한계보다 훨씬 더 커다란 잠재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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